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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유령 퇴장(2007)> Philip Roth- Exit Ghost이번주의 책 2024. 7. 30. 23:13
필립 로스 장편소설, 박범수 옮김(24/7/4~24/7/30) 시험기간 중 학교 도서관에 놀러 갔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찜해 놓았던 책.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은색 하드커버로 되어있는 책이었기에 더 끌렸던 걸지도 모른다. 하드커버 책은 오랜만에 읽는다.
시험기간이 끝난 뒤 빌려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27일 간을 읽었다. 거의 한달동안 붙잡고만 있었던 책이다. 나는 책 읽는 시간을 특정해서 읽기 보단 학교 쉬는시간 내지 점심시간 등이나 지하철을 탔을때, 그리고 주로 지루한 자리에 있을때 읽는 편이라 책 읽는 기간이 늘어지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는 좀 많이 늘어지긴 했다.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 어려운 느낌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 Philip Roth(1933~2018) 는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힌다. 1988년에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 외에도 <미국을 향한 음모>, <에브리맨>, <굿바이 콜럼버스> 등등의 여러 대표작들이 있다. 내가 읽은 <유령 퇴장>은 필립 로스의 소설속 등장하는 캐릭터 '네이선 주커먼' 의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으로, 이 때문에 제목또한 유령 '퇴장' 이 아닐까 싶다. 본문 내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과 주커먼 시리즈가 아닌 또다른 필립 로스의 작품, 총 두 권의 책만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 학교 도서관 덕분에 나는 시리즈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맨 마지막 권을 읽음으로써 엄청난 스포를 당한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은 책에 대한 면밀한 분석글이 아닌(그럴 능력이 안됨) 그냥 나의 개인적인 느낀점과 견해를 구구절절 늘여놓은 글일 뿐이니 마음가는 대로 읽어주었으면 한다...^_^
이 소설은 미국의 9.11 테러가 일어난지 3년 후인 2004년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의 주인공 주커먼은 현재 일흔 한세의 노인으로, 10년에 받았던 테러 조직의 협박 편지(주커먼의 직업은 작가이고, 쓰던 작품들의 정치적 소재 때문인 듯 하다)를 계기로 도시에서 벗어나 숲속의 오두막에서 따뜻한 성격의 관리인 부부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중 이었다. 그리고 주커먼은 발기부전이다. 사실 이 소재가 소설 첫 장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고 꽤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발기부전 및 전립선 문제가 있는 남성들이 어떤 수술을 받고 또 어떻게 지내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발기부전이라는 소재는 나중에 가서 더 면밀하게 다뤄지는데,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 육체 및 정신의 낡음을 받아들이는 늙은 주커먼이기 때문에, 주커먼이 자신의 육체적인 한계 및 문제에 대해 수치심과 무력함, 그리고 절망감을 느끼는 소재라고 보여진다. 하필 발기부전인 이유는, 주커먼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뉴욕에 있는 병원으로 향하게 되면서 만나는 30대의 젊은 부부와 관련되어 있다. 앞서 말한대로 주커먼은 원체 본인의 성격과는 상반되는 충동에 휩사여 다시 뉴욕이라는 도시로 향하는 모험을 가게 되는데, 이는 필립 로스의 '나이가 들었음에도 무모한 순간은 존재한다' 라는 전언에 비롯된 내용일 것 이다.
주커먼은 테러라는 공포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빌리와 제이미 부부에게서 잠시동안 서로 집을 바꾸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주커먼과 제이미는 서로 구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주커먼은 과거 대학에 초청되었던 시절 대학생 제이미를 만났었던 경험을 회상하게 된다. 그 뒤로 주커먼은 제이미에게 이성적 욕망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발기부전이라는 자신의 낡은 육체를 매번 체감하며 절망스러워 하게 된다. 그 뒤로 소설에는 본인과 제이미가 대화하는 내용을 상상하여 연극 대본의 형태로 쓴 소설의 내용이 나오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은 <그와 그녀> 로, 사실상 실제로 일어난 대화 내용이 아닌 주커먼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이미가 현실의 모습보다 더욱 적극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흔 한살과 30대 당차고 똑똑한 유부녀의 연애라니... 물론 연애까지 발전하지 않았지만, 주커먼은 진심으로 제이미를 갈구하고 숭배한다. 더 이상 여자를 안을 수 없는 남자의 감정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본인의 욕구를 물리적으로 제한당하는건 절망적인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그: 여자를 사귀지 않은 지 꽤 되었다네. 지금 이 사건은 놀라운 반전이고 나한테 득이 된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야. 누군지 기억은 안 나네만 이런 글을 남겼지.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오는 위대한 사랑은 모든 것과 엇갈린다."
그녀: 위대한 사랑이라고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그: 그건 병이라네. 열병. 일종의 최면이야. 난 그걸 자네와 단둘이 방 안에 있고 싶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네. 나는 자네의 마법에 걸리고 싶다네.
[2 <마법에 걸려>- 178p 中]
제이미의 대학시절 애인인 리처드 클리먼이라는 젊은 작가 지망생은 주커먼과 다르게 청년 특유의 열기와 당당함, 오만함을 보여주며 주커먼의 젊은 시절 정신적 스승이었던 로노프의 전기 소설을 지필할거라는 야망을 펼친다. 이에 주커먼은 로노프의 윤리성을 작가적 명예로 덮어씌워(심지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사실들로 범벅되어) 세상에 내보내는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클리먼의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점점 망가져가는 기억력을 붙들고 움직인다. 그러나 주커먼은 자신은 이 젊은 영혼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더이상 없고, 본인을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자들' 축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클리먼은, 노쇠를 알리가 없는 창창한 나이의 젊은이들을 '아직은 아닌 자들' 이라고 말한다.
클리먼은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이가 전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확실한 명분과 신념을 가진 잘생기고 열정적인 똑똑한 젊은이이다. 주커먼 또한 젊은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다(잘생겼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젊었던 주커먼과 함께했던 이들은 이제 늙었고, 죽음에 가까워졌으며, 망가지고 있다.
"그 사람이 불러줬거든요. 그 글은 그 사람의 말이에요. 그는 말했어요. '책을 읽는/ 글을 쓰는 사람들인 우린 끝났어. 우린 문학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걸 목격하고 있는 유령이야. ..."
[3 <에이미의 뇌>-245p 中]
인생에 남은 일이라곤 죽음뿐인 노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생을 살아가야할까? 작가인 주커먼 또한 죽게 되었을때 클리먼은 전기라는 이름으로 주커먼의 실존했는지도 모르는 사생활을 폭로할까? 어떤 말들로 작가들을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을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나또한 늙을 거라 생각하면서 읽으니 문득 불행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찰나의 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고치고, 사상을 고치고, 현재를 외면하는 식으로 젊음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는 연예인같은 사람들은 더욱 부단히 노력한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또한 노화를 겪고 그제서야 젊었던 자신을 체감하는데 말이다.
노화는 단순히 외면의 모습을 바꾸는 것 만이 아닌 내면의 자신을 갉아먹는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을 순차적으로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우리도 언젠가 조용히 퇴장해야만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끝까지 욕구대로 살아갈 것 이다.